정신건강

제 시간만 흐르지 않고 멈춰 있는 기분이에요

듀더지

2026.05.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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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녕하세요!
3년 정도 전 평생 안고 가야 할 희귀 지병을 얻게 된 마음친구입니다.
문장 그대로 저에게는 죽을 때까지 관리해야 하는 지병이 있어요. 희귀한 병인지라 인식도 잘 안 되어 있고, 매 식사마다 스스로 주사를 주입해야 하는 어려움이 있습니다. 형편이 이렇다 보니 자연스레 친구도 잘 만나지 않게 되고, 직장 생활도 덜컥 겁이 나 선뜻 도전조차 해보지 못하고 좌절만 하고 있는 상황이에요. 사회에서 아무런 역할도 하지 못하고 무기력하고 우울하게, 당장의 허기를 채워 줄 도파민만 추구하며 공후하게 산 지도 3 년 가까이 된 것 같습니다. 나이가 적지는 않지만 그렇다고 이렇게 마냥 인생을 포기할만큼 많이 산 것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일어서서 나아가고 싶은데 꼭 진흙탕에 빠진 것처럼 이 우울에서 벗어나기가 쉽지 않습니다.
달라진 제 상황을 받아들여야 하는데 사실 저는 아직까지도 내가 남들과 다르지 않다고 믿고 싶은 것 같아요. 현실을 마주하면 자꾸만 나에게 병이 있음을 인식하게 되니 더 숨게 됩니다. 회피 성향이라고 하나요?
어떻게 하면 이 문제를 받아들이고 다시 일어설 수 있을까요. 사실 지병을 앓기 전부터도 준비하던 시험 실패 및 부모님 건강 문제 등 여러 악재가 있었는데, 3년 전 그 일을 계기로 쌓아오던 게 겹쳐 완전히 침체된 느낌입니다.
하지만 현재의 저는 분명히 나아지고 싶다는 생각을 자주 해요. 줄곧 세상이 이대로 멈춰 버리면 좋겠다고 생각했었지만, 요즈음은 조금씩 바뀌고 있습니다. 자기 자신을 인정하고 안아줄 수 있는 방법을 알고 싶어요. 혹은 그저 괜찮다는 위로 한 줄이라도 감사할 것 같아요.
들어주셔서 정말 감사합니다. 사실 저는 줄곧 누군가가 제 이야기를 알아주고 들어주기를 바라고 있었나 봐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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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담사 답변

* 마음하나의 전문 상담사가 답변하고 있어요.

안녕하세요. 듀더지님, 우선 이런 고민을 이 곳에 나눠주신 점 감사합니다.

듀더지님은 단순히 “우울한 상태”를 넘어, 삶의 방향과 자기 존재감 자체가 한순간에 흔들리는 경험을 아주 오래 버텨오신 것 같아요.
특히 평생 관리해야 하는 희귀 질환을 갑작스럽게 받아들여야 했던 과정은, 단순한 건강 문제를 넘어 “이전의 나”와 “지금의 나” 사이의 단절처럼 느껴질 수도 있습니다.
그래서 사람을 만나거나 사회로 나아가는 일조차 두려워지고, 세상은 계속 움직이는데 나만 멈춰 있는 기분이 드는 것도 너무 자연스러운 반응입니다.

그리고 글에서 가장 마음이 남는 건, 듀더지님이 아직 완전히 삶을 포기한 상태는 아니라는 점입니다.
“나아지고 싶다”, “다시 일어서고 싶다”는 마음이 계속 남아 있다는 건, 아주 작은 불씨라도 여전히 살아 있다는 의미이기도 하거든요.
사실 회복은 대단한 의지보다도, 그렇게 아주 작게라도 “다시 살아보고 싶다”는 감각에서 시작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지금 듀더지님이 가장 힘든 이유 중 하나는, 병 자체뿐 아니라 “예전처럼 살 수 없는 나”를 계속 부정하고 숨기며 버텨온 시간이 길었기 때문일 수도 있습니다. 사람은 큰 상실을 겪으면 자연스럽게 부정과 회피를 거치기도 해요.
하지만 그건 약해서가 아니라, 마음이 감당할 시간을 필요로 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지금 필요한 건 억지로 “괜찮은 사람”이 되는 것이 아니라,
“병이 있는 나도 여전히 나다” 라는 감각을 아주 천천히 다시 만들어가는 과정에 가까워 보입니다.

처음부터 완전히 받아들이려 하지 않아도 괜찮습니다.
하루를 조금 규칙적으로 보내보기, 짧게라도 밖에 나가보기, 아주 작은 역할이라도 다시 시도해보기처럼 “세상과 다시 연결되는 경험”을 조금씩 늘려가는 것만으로도 마음은 서서히 달라질 수 있습니다.

무엇보다 듀더지님은 고장 난 사람이 아닙니다.
너무 많은 일들이 한꺼번에 겹쳤고, 그 시간을 혼자 오래 버텨오느라 지쳐 있었던 거예요.
그런데도 지금 이렇게 자신의 마음을 솔직하게 꺼내고, 다시 살아가고 싶다고 이야기하고 있다는 건 생각보다 큰 힘입니다.

지금의 듀더지님도 충분히 의미 있는 사람이고, 멈춰 있는 것처럼 보여도 마음은 이미 아주 조금씩 다시 움직이기 시작하고 있는지도 모릅니다.

질병을 잘 관리하시면서 조금씩 자신을 받아들이고, 작은 성공적인 경험을 차근차근 쌓아가시면서 본인을 다독이고 외면하려던 스스로를 마주볼 수 있는 용기를 가지실 수 있기를 응원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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